제목: 우시더라
본문: 누가복음 19:41-44
찬송: 549장 <내 주여 뜻대로>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내용이 성경에 세 번 언급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보시며(41절),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세 번만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시며, 민망히 여기셨던 마음들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님의 눈물 흘려 우심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시더라’는 말씀에는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요 11:36) 하는 사람들의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사랑하는가?’ 때문에 우셨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섭섭함이나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 때문이 아니라, ‘얼마나 사랑할까?’ 때문에 우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셨던 모습에서 예수님은 ‘사랑과 평화의 거절’을 인하여 눈물 흘리십니다. 사랑의 거절! 그것은 곧 멸망이며 심판인데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본문의 “우셨다”에 해당하는 단어의 원뜻은 ‘소리내어 통곡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성전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백성들을 보시며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으면, 예수님께서 ‘소리내어 통곡’을 하셨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으로 기도하셨다(히 5:7)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눈물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2:44절에서는 나의 뜻과 계획, 나의 만족과 성취를 위함이 아닌,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치리라는 결단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시더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예수님은 지금도 나를 위해 우시고 계십니다.
왜 사랑을 받지 않고 거절하는지,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우시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모두를 위해 우시고 계십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좌절하고 절망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오늘 나는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누가, 무엇이 과연 그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 속에서 내 마음에 새기고자 하는 예수님의 흔적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