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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치를 품는 사랑
본문: 요한복음 13:1-2
찬송: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오로지 한 가지 이유는,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스스로 죄인의 모습을 가지시고 거룩을 버리셨습니다. 무한한 낮아지심입니다. 아예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만이 우리를 살리는 방법임을 주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낮아지는 것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유월절 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주님이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후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누구의 발을 먼저 씻어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가룟 유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같은 행동을 하신 근본적인 동기가 본문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주님은 자신이 만날 죽음의 날이 가까운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더 세심하게 표현하고자 하셨습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가룟 유다의 마음은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으로 결정된 상태였습니다(2절). 하지만 1절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마음은 여전히 가룟 유다가 ‘자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마음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밖에 없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분명히 죽음이 가까워 온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 씻으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요 13:4-5).

드디어 시몬 베드로의 순서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이 주님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하였습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요 13:8). 발을 보이는 것은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로 종이 발을 씻어주었는데, 그때는 수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수치를 닦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닦는 자가 수치를 당하는 것이고 종으로서 섬기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같은 반응에 주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화들짝 놀라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요 13:9) 이어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요 13:10)고 말씀하십니다. ‘온 몸이 깨끗하다’, 그러므로 발을 씻는 행위가 상징적 행위임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이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바로 이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주와 선생이 스스로 종이 되어 수치를 품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발을 씻기는 것은 회개의 의식이 아니라 ‘수치를 품는 의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리더가 제자의 수치를 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바울 역시 그 순간부터 예수의 방식을 좇았습니다. 기꺼이 섬기고 종이 되기를 즐거워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19,22).

오늘 우리의 문제는 섬기지 않고 종이 되지 않으려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럴 때 교회가 귀족모임이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 사명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종 됨’을 놓쳤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 전부를 잃는 것임을 모르고 말입니다. 


자신이 있던 위치에서 내려와 보십시오. 주님처럼 종으로 살아보십시오. 
하루 혹은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이라도 철저히 종처럼 섬기며 살아보십시오. 
그때마다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이 되어 종으로 사신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말씀 속에서 내 마음에 새기고자 하는 예수님의 흔적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