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소중합니다(6)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
빌립보서 2장 1-4절
2024년 9월 8일
결단찬송 : 교회
내가 오늘 집에 안전하게 돌아온 것은 내가 운전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소중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인생이라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바울이 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는 과정에 바나바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바나바가 마치 생명의 은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교여행을 하던 중에 두 사람이 다투었습니다. 이 장면을 성경은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고 표현합니다. 아니 어떻게 르럴 수 있습니까? 할 수 있겠지만, 너무 놀라지마세요.
첫째, 영적인 친구끼리도 갈등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서로 다투는 것을 정당화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감정으로 싸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를 놓고 차이가 생겼던 것입니다.
둘째, 의견 차이가 있어도 여전히 영적 동료요 친구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친구요 동행자가 된 것은 우리가 한 몸이신 주님 안에서 한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이 사실을 놓치면 안됩니다. 그래서 비록 갈등이 있어도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라고 하는, 한몸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남을 더 낫게 여깁시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
그가 말하는 남이 어떤 부류인가를 헤아려 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바울이 말하는 남이란, 천한 종이고, 개 취급하던 이방인이고, 인간의 숫자에 포함도 되지 않았던 여자입니다. 바울은 그런 자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사실 바울이 말하는 남은 여러가지 면에서 나보다 더 못한자입니다.
여러분이 더 낫게 여겨야 할 남은 누구입니까?
반드시 이 곳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무시하거나 틀렸다고 비난했습니까?
다시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십시오.
주 안에서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서로를 그리스도를 대하듯 대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의 일을 인정합시다.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4)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라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의 방식을 인정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도우십시오.
그 사람이 하는 그것도 주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 뜻과 다르다고 그가 하는 일을 방관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잘 지켜야 되는 것은 관계가 무너지면 하나님의 사역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관계가 원만하고 두터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관계는 친목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누군가의 뿌리를 붙잡아 줄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인생의 뿌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붙잡아 주길 원합니다. 누군가를 붙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내 인생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깨닫고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의 기쁨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