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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1 04:52

3월 21일, 용서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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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의 회복
본문: 마태복음 18:21-35
찬송: 251장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시는 모습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행위로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수치까지도 품어주신 사랑이요, 무한한 용서였습니다.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대하심이 사랑이라면, 씻겨주심으로 드러난 것이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21절)

우리가 좋아하는 질문 방식입니다. 주님도 매우 구체적으로 용서할 횟수를 제시하셨습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22절), 숫자로는 490번입니다. 그러나 사실 불가능한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용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쩌면 베드로는 자신이 했던 용서 행위를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주님이 약간은 과장된 표현으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지 자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주인에게 빚을 졌는데, 그 액수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었는데,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만일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잡으면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약 6억원 정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일만 달란트는 대충 6조 정도가 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그런데 갚아야 합니다. 책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갚을 길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도 갚을 수 없어서 죽어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말이고 지옥입니다. 하지만 지옥은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곳입니다. 어떤 틈도 없는, 희망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이 말씀이 지옥을 말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천국을 말하려고 하신 비유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시작 구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23절).

천국은 도무지 갚을 길이 없는 자가 아무런 조건도 없이 탕감 받는 곳, 전적인 은혜만 있는 곳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인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27절).


‘불쌍히 여김’이 모든 이유였습니다. 그를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을 때 놀랍게도 정의를 요구합니다. 당시 하루 품삯으로 계산하면 일천 만원 정도의 돈이었습니다.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6조 원에는 비할 수 없는 액수였습니다. 더욱이 그 동료인 종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법대로 처리하여 감옥에 집어넣습니다(29-30절).

법대로 처리하다니, 그에게는 그가 탕감 받는 것 같은 주님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불쌍히 여김도, 긍휼히 여김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곳이 지옥이 되었습니다. 지옥은 그 종이 자초한 곳이었고, 그 지옥의 상황은 곧바로 자신에게도 전이되었습니다. 그가 만난 지옥의 이름은 ‘법대로’ 였습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32-34절).


우리는 ‘법대로’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로 사는 방법이 바로 용서입니다. 분명 그 종이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것은 그가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탕감하거나 갚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은 그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받은 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쉽게 답이 보입니다. 이 세상이 그토록 시끄럽고 힘들어진 이유는 우리가 받은 무조건적인 은혜를 망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용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이러한 주님의 용서를 기억하며,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의 잘못을 먼저 적은 후 자신이 용서받은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그리고 먼저 주님 앞에 그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어느 순간 하나님이 표현할 용기도 주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놓치지 말고 직접 말로든, 편지든, 문자든 진심으로 용서를 말하십시오.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말씀 속에서 내 마음에 새기고자 하는 예수님의 흔적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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