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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4장 18-22절
찬송: 353장 <십자가 군병 되어서>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가운데에 1942년에 제작되어 현재는 파리 피카소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황소 머리]라는 작품은 자전거의 좌석과 손잡이만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고장난 자전거의 좌석과 손잡이, 별 쓸모가 없는 것들이지만 피카소의 손에서 훌륭한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어 예술품이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작품인 [모세] 또한 돌만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평범한 돌이나 폐품도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고물상에게 들어가면 고물이 되고, 예술가의 손에 들어가면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의 손에 붙잡혀 쓰임 받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면 걸작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붙잡혀 쓰임 받는다면 그보다 더 신나고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기쁜 일일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무덤에 계십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죽음조차도 버리지 않으시고 사용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무덤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무덤처럼 인생이 망가지고 깨져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복음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특별할 것 없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부르셨는지, 그리고 예수님에 의해서 그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에게도 여전히 희망과 기회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너무 빨리 판단하거나 결정하지 마십시오.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난주간의 마지막 날이지만 그 시작의 자리로 되돌아가서 망가진 자와 같은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살펴 보면서, 희망의 이야기를 매듭 짓고자 합니다. 어떻게 할 때 여전히 희망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의 일상을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18)

예수님에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신 순간은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들이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장차 영적인 일, 특별한 일을 감당할 제자들을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서 부르셨을까요? 예수님은 한 사람이 가장 정직한 한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우리다운 때는, 바로 우리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입니다. 자신의 일상적인 자리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통해서 그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그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셨습니다. 
일상생활이라는 것은 (1) 단조롭습니다. (2) 매일 반복됩니다. 그래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하고 지루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의 일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십니다.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이 발전해 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1) 처음에는 특별한 시간을 함께 합니다. 영화를 보고, 맛집에서 데이트하고, 여행을 갑니다. (2) 그런데 이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상의 평범한 시간을 함께 합니다. 밥먹고 청소하고 장보고, 매일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을 함께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함께 하는 자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평범한 삶을 더 알고 싶어하시고, 그래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십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시편 139편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십니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일상이 갖고 있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일어서고 앉는 것을 살펴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왜 내가 이 자리에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참새 한 마리도 다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맡겨진 이 평범하고 매일 반복되는, 그래서 때로는 지루하고 때려치우고 싶은 이 일 안에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기만 해도, 우리들의 일상을 살아가는 태도는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 내가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이 일을 사랑하고, 이것이 내 인생임을 받아들이고, 그렇기에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기 위해서
첫째,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불만하지 맙시다.
둘째, 감사 합시다. 
셋째, 더 열심히 삽시다.

생각하기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불만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왜 그런 불만이 생긴 것일까요? 외적인 문제입니까? 아니면 내면의 문제가 더 근본적인 문제인가요? 자신의 불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둘째, 주님의 부르심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19-20)

일상생활은 분명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 파묻혀 살아갈 위험성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일상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서 동시에 필요한 것은 영적 민감성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만을 위해서 살지는 않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일상에 너무 몰두해서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놓칠 정도로 자신들의 일상 생활에 빠져 있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럼 무엇이 주님의 부르심입니까? 부르심의 목표는 주의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서 주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의 말씀을 살펴 봅시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로새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사회적 관계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누구든 동일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지극히 평범한 삶일지라도 주님을 의식하면서 살라는 요구입니다. 그 부르심을 알게 되면, 그 일상의 자리는 늘 특별해질 것입니다. 


셋째, 더 큰 부르심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22)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부르심 속에서 자신들에게 더 큰 삶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주님을 따릅니다. 배와 그물을 버립니다. 그들은 더 높은 부르심, 더 특별한 인생을 위해서 집중합니다. 일상을 뛰어넘는 더 큰 부르심으로 발돋음하는 결단이 필요할 때, 그들은 기꺼이 결단했습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더 큰 부르심의 자리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 방법: 그 동안 일상의 삶을 통해서 축적된 경험들을 주님의 일에 재적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평생 살아오면서 누적된 삶의 경험들을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고기를 낚는 어부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어부의 경험이 사람을 전도하는데 사용된 것이죠. 자신의 경험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면 그것이 거룩입니다. 제자들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삶의 노하우를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일상생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거룩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 것은 일상의 기술이지만 그 지식을 가지고 교회를 봉사하고 건물을 관리하고 섬기면 그것은 거룩한 일이 됩니다. 이것이 일상의 경험을 가지고 더 큰 부르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경험들 중에 연장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할 선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드리는 것이 헌신이고 충성입니다. 

두번째 방법: 더 높은 부르심에 참여하기 위해서 기꺼이 과거를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마가복음 10:29-30)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는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제자들이 버린 고깃배와는 차원이 다른 것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것들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무엇인가를 버리라고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부담을 갖습니다. 그런데, 버릴 것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그것을 버리면서까지 집중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에 우리들의 마음을 고정해 보십시다. 더 큰 인생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삶이 있습니다. 일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희망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꺼이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처럼 큰 것을 보는 사람에게 진정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것은, 버리고서라도 붙잡아야 할 큰 세상을 모르기 때문 아닐까요? 이런 불편한 감정을 버리고 더 사랑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해서 불만스러운 것 아닙니까? 제자들은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희망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희망을 따라 살았습니다. 버리는 것들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질문하기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입니까? 진정 희망의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기도하기
1. 부활절 예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1895년 이 땅에 선교사들이 들어온 날이 부활절이었습니다. 이 땅의 영적인 역사가 바뀐 날은 바로 부활절입니다. 다시 그런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2. 코로나19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시간들을 잘 사용하여 자신들을 잘 세워가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3. 연로하신 부모님들, 교회의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4. 어려운 때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도록, 특별히 신앙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5. 이 땅이 분열과 반목을 넘어서서 화합하고 하나가 되도록 역사의 주관자이신 주님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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