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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교회

11월 21일, 출애굽기 8장

2022.11.20 20:40

관리자 조회 수:130

본문: 출애굽기 8장 1-32절
제목: 타협과 혼합은 대안이 아닙니다.
찬송: 370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 확인

나일강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을 시작으로, 드디어 애굽에 10가지 재앙이 시작됩니다. 이 일을 통해서 그 동안 430년 동안 잊혀진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존귀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리시기 위해서 행하신 10가지 이적은, 애굽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재앙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동일한 일도 서 있는 삶의 위치, 내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과의 친밀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 즉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모르는 자들과 보는 것, 생각하는 것, 결정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재앙이 아닙니다.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증거입니다. 


#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기적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피조 세계 자체가 기적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바로와 사람들에게 두 번째로 보내신 기적은 그들이 신으로 섬기던 개구리로 애굽을 덮어 버리는 재앙입니다(:2). 개구리 떼가 갑자기 땅으로 올라와 애굽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뒤덮어 버리자 애굽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을 겪게 됩니다(:6). 요술사들이 이번에도 재앙을 똑같이 따라합니다. 그들도 개구리를 땅에 올라오게 합니다(:7). 그런데 겉모습은 동일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재앙과 그들의 요술에는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합니다. 그들은 개구리를 그저 땅에 올라오게 했을 뿐입니다. 

바로가 굴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을 약속합니다(:8). 하나님의 권능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온 땅을 뒤덮은 개구리를 해결할 방법도, 피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화려한 왕궁도 도피처가 될 수 없었으며, 강력한 왕권도 무용했습니다. 자신의 무능과 하나님의 권능 사이 어찌할 수 없는 격차를 인지하는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굴복과 간청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의 마음이 곧 변했습니다. 바로는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 금세 마음을 바꿨습니다(:15). 바로가 이럴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다가, 고난이 오니 바로 원망했습니다(4:31, 5:21).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타협과 혼합은 신앙이 흔들리게 만듭니다.

바로는 재앙이 거듭될수록 하나님의 권능을 점점 더 강하게 체험합니다. 그 힘을 자신이 넘을 수 없음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전략을 수정합니다. 타협과 속임수입니다. 하지만 그의 얕은 생각과 방법은 하나님의 큰 그림 위에 이미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계책이 계속될수록 그와 애굽은 수렁 속에 더 깊이 빠지게 됩니다. 

애굽 온 땅이 파리 떼로 가득한데도 이스라엘이 애굽에 제공하는 노동력을 포기할 수 없었던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25)고 제안합니다. 즉 애굽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타협안인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이스라엘이 애굽 내에서 하나님을 섬기면 결국 애굽 사람과 충돌을 피할 수 없으며, 유혈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26). 물론 모세가 타협안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이는 바로의 제안이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신앙을 지키며 살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렇듯 교묘한 타협안이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기되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적당히 타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데,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채근하는 것입니다. 하나둘 타협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신앙의 길에서 멀어져 있을 것입니다. 


# 진리는 대안이 없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눈앞에 닥친 재앙만 물러가면 다시 괜찮아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처럼 눈앞에 닥친 것만 해결하려는 태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눈앞에 닥친 것들에 압도되어 살아간다면 계속 닥쳐오는 재앙이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그분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타협안을 받아들이거나 우리도 세상이 하는 대로 한다는 식으로 대처해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물론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하나님을 섬긴다거나 하나님과 함께 다른 것을 섬긴다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세상의 방식을 따르는 것은 성도의 삶에 있어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은 절대로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속임수와 위압적 권세로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때(열 번째 재앙)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득세에 낙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사람들을 향한 계획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는 진리의 문제에서는 한 치의 타협도 없다는 확고한 태도로 믿음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