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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교회

11월 22일, 출애굽기 9장

2022.11.21 21:29

관리자 조회 수:146

본문: 출애굽기 9장 1-35절
제목: 너무나 명확한 경고
찬송: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첫째와 둘째 재앙(피, 개구리)은 물, 곧 나일강과 관련이 있었고, 셋째와 넷째 재앙(이, 파리)은 땅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제 다섯째와 여섯째 재앙은 땅 위에 사는 짐승과 사람과 관련되어 있고, 이어지는 우박과 메뚜기 재앙은 하늘 곧 기상이변과 관련이 있습니다. 점점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시는 재앙이 아래(물)에서 위(땅, 하늘)로 올라가며 애굽과 그 우상들을 압박해 가고 있는데, 바로는 끝까지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 경고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고를 받습니다. 그 경고들은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알려 주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고에 따라 행동합니다. 하지만 가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 고집과 감정대로 행동합니다. 적지 않은 경우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또다시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전달됩니다(:1). 하나님은 당신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칭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물론 히브리 사람들의 적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과 그 제국의 왕이기에 구원과 해방의 가능성은 전무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고, 당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칭하시는 순간, 힘과 부와 권력의 차이는 무의미해집니다. 무한대 앞에서는 아무리 큰 수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간단히 해방시키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바로 애굽 백성을 쳐서 죽이시는 것입니다. “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15). 그러면 번거롭게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키면서 바로가 백성을 보내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와 애굽 백성을 모두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바로와 애굽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자라고 해서 무조건 미워하시거나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만을 편애하셔서 다른 백성에게 불이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일곱째 재앙인 우박 재앙의 특징 하나는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거운 우박이 다음 날 하늘로부터 내릴 것이라고 특정해서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짐승이나 사람이나 집에 들어가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19). 그렇기에 이 재앙이 매우 파괴적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대비하고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심판과 복수는 분명히 감정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있습니다. 상대에게 보복함으로써 원한을 풀고 후련해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벌은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목적이 있고, 의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 2:4).


#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고집과 교만의 결과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우박 재앙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24-25). 그래서 바로는 자신의 행동을 ‘범죄’라고 규정하면서 자신과 애굽 백성이 악하다고 고백합니다(:27). 인간의 능력으로 맞설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죄의 고백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섰던 모든 사람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점점 더 강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바로는 본능적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그 회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상황에 따른 것이기에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전 협상에서 바로의 요청과 재앙의 종료 시점은 대략 하루 정도 차이가 있었습니다(8:10, 8:29). 그런데 이번에는 모세가 손을 펴는 순간 재앙이 멈췄습니다(:29).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던 것입니다. 큰 재앙과 바로의 급박한 요청 그리고 모세의 간구에 재앙이 즉각 멈춘 것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여호와께서 세상을 주관하신다’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 삶에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도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선교 중에 당한 환난을 전하며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하면서, 그러한 상황이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오직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린도후서 1:8-9). 

그러나 엄청난 재앙을 겪고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아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30). 밀과 쌀보리는 남아 있었기에, 바로가 생각하기에 최악은 아니고 아직 남은 것이 있으므로 좀 더 버틸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31-32). 성경은 우박이 그침과 동시에 바로와 신하들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모세와 아론 앞에서 했던 약속을 어겼음을 기록합니다.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34-35).
탐욕과 욕망을 품은 사람들의 행동은 비슷합니다. 잠시 흔들릴 수는 있지만, 결국 욕망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시합니다(시편 10:3). 욕심은 죄의 뿌리입니다. 

애굽을 불과 우레와 우박으로 치시면서도 그들을 위한 양식을 남겨 두시고, 그들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으로 항복해도 재앙을 거두어 주실 만큼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를 범하는 행위는 결국 자기 머리 위에 영원한 심판의 숯불을 쌓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심판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죄와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과 영생의 길로 가야 합니다. 경고를 받았음에도 고집과 유혹에 이끌리고 있다면 바로의 결말이 우리의 결말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