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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교회

12월 10일, 출애굽기 25장

2022.12.09 21:40

관리자 조회 수:158

본문: 출애굽기 25장 1-40절
제목: 성막을 지어야 할 이유
찬송: 308장 <내 평생 살아온 길>


# 성경 통독의 첫번째 위기

통독을 결심하고 성경을 읽다보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 읽기가 힘든 순간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첫 장부터  재미 있는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창조와 타락, 족장들의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와 같습니다. 이런 흐름은 출애굽기 초반까지는 이어집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9장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사라지고 딱딱한 법 이 등장합니다. 급기야 25장부터는 그 이름이나 모양에 대해서 짐작도 잘 안되는 성막 이야기가 40장까지 전개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이 없지만 성막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인기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내용도 복잡할 뿐만 아니라 성막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모양, 크기, 각종 기구들의 쓰임새를 몰라도 믿음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 지금도 성막이 필요할까요?

그럼에도 성막은 성전 신앙으로, 더 나아가 오늘날 교회생활에도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막 부분을 어떻게 묵상해야 할까요? 재료의 종류나 모양이나 크기와 같은 외형적인 것들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펴보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원하셨을까요? 그렇다면 황금집이나 거대한 대리석 집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이 만들라고 하신 것은 장막입니다. 성막이라고 하니까 거창한 것 같지만 요즘식으로 보면 캠핑가서 치는 텐트입니다.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서 집, 즉 건물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입니다. 가장 높은 하늘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이제 가장 가까이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막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쉽게, 또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말에는 엄청난 모순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 많은 인간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룩과 죄는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야 최고의 축복이지만, 죄인들에게는 동시에 최대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복을 받기도 전에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에 죽는 것이 더 빠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위기를 복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덮는 곳, 바로 속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없지만 성막은 죄 많은 인간이 어린양의 피를 통해 속죄함 받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허락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출애굽기의 절정은 홍해의 기적이 아니라 성막입니다. 


# 증거궤와 속죄소

하나님은 성막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증거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10)

증거궤는 성막 중에서도 지성소(거룩한 곳 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곳)에 위치했습니다. 가로 110센티, 세로 67센티, 높이 67센티의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만든 상자입니다.
나무 상자에 하나님이 지정하신 물건들을 담고 그것을 덮는 덮개가 필요했습니다. 그 덮개가 바로 속죄소입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21)

간단히 말하면 지성소에는 나무상자 하나가 있었고 그 상자를 덮은 뚜껑이 있었습니다. 나무상자를 증거궤, 뚜껑을 속죄소라고 불렀습니다.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는 증거궤와 그것을 덮는 속죄소만 있었습니다. 비록 금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작은 나무 상자인 증거궤가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2)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속죄제를 드리면서 희생제물의 피를 속죄소 앞에서 뿌리면서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였는데 이것은 온 인류를 구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원어적으로는 ‘덮어주는 처소’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번역으로는 “백성의 죄가 용서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라고 하신 이유는 죄인들의 죄를 은혜로 덮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덮어줌의 은혜가 없다면 그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죄인들 가운데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서 성막, 즉 덮어주는 은혜의 자리를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막은 지금도 필요합니다. 교회는 덮어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부족을 덮어주고, 실수를 덮어주어야 합니다.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덮어주시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위해서 증거궤와 속죄소가 필요합니다. 덮어줄 때 지금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한 해를 정리할 때입니다. 
아직 덮어주지 못한 것이 있지 않는지, 잘 살펴 봅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언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