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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교회

12월 30일, 레위기 2장

2022.12.29 23:05

관리자 조회 수:184

본문: 레위기 2장 1-16절
제목: 고운 가루가 됩시다.
찬송: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 예배를 배워야 하는 이유

레위기는 단순히 제사 드리는 방법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의 의도는 '너희는 하나님께 맞추어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각자의 삶을 하나씩 바꾸어 가는 그 과정이 바로 예배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근본적인 이유는 예배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문제는 횟수나 규모가 아니라 예배의 변질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레위기 묵상이 예배의 방법이나 형식에 제한된 묵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예배를 더 깊이 경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 고운 가루가 됩시다. 

제사에 사용되는 제물의 종류에 따라 세 가지 예배가 있습니다.
1) 번제는, 고기를 태우는 제사입니다. 
희생 제물을 가죽만 빼고 모조리 불에 태워 그 향기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단에서 드려졌다 하여 '번제'라고 하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예배자의 전 인격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2) 소제는, 곡식을 태우는 제사입니다. 
곡식을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 기름을 붓고 유향을 넣어 불태우거나 철판에 부치거나 화덕으로 굽거나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그 때 누룩을 넣으면 안되고 소금을 넣어야 합니다.

3) 전제는, 포도주나 독주를 제단(또는 제물 위)에 부어 드리는 제사입니다. 
전제는 단독으로 드려질 수 없고 항상 다른 제사에 곁들여 드려졌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헌신적인 봉사, 주를 위해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거룩한 희생을 상징합니다. 이런 의미로 바울은 자신의 남은 삶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겠다는 마음을 전제와 연결해서 고백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디모데후서 4:6)

2장은 소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1-2)

소제는 자기의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짐승을 드린 번제와는 달리 소제는 곡식가루를 드립니다. 작은 소유물이라고 할 때, 우리가 매주 드리는 주정헌금과 같은 것이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레위기의 제사법을 오늘날의 예배와 일대일 방식으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레위기를 통해서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번제의 큰 제물이 아닐지라도, 작은 곡식의 일부일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이것이 소제의 정신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 생각에 작은 것일지라도 온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에 있어서 소홀하게 대할 것은 없습니다. 

특별히 곡식을 맷돌에 갈아야 합니다. 욕심을 깨트리는 과정입니다. 내 것이라는 욕심이 부숴져서 고운 가루로 되어야 합니다. 드리는 예물도 중요하지만 드리는 그 마음의 상태는 더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때 내 것이라는 아까워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태도가 중요한 것은, 남은 소제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납니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3)

예배자가 곡식 가루를 많이 가져 와도 예배에 필요한 것만 드리고 남은 것이 있으면 제사장의 몫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 구별된 제물이기에 구별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먹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헌금의 일부를 제사장과 레위인 격인 목회자들의 생활비로 사용하는 것의 타당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그 순간,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물론 드리기 전에도 그 본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예배를 통해 드린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남은 것을 제사장에게 돌리라는 것은 그것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교회를 재건축해서 예배당을 새롭게 바꿨는데 여전히 오래된 강대상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 강대상을 헌물하신 분이 자신이 드린 강대상을 바꾸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랍니다. 소제의 이야기는 이런 식의 태도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드리고도 그것을 내 의도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욕심입니다. 그 욕심이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헌신했던 것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고운 가루로 갈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소제입니다. 곡식 알맹이로는 소제가 될 수 없습니다. 마음에 응어리가 남아 있다면 온전한 소제가 될 수 없습니다. 고운 가루로 우리 자신을 드립시다.

질문: 
마음에 아직 남아 있는 응어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예배, 즉 신앙생활에 어떤 방해가 되는가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