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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교회

1월 3일, 레위기 5장

2023.01.02 20:57

관리자 조회 수:93

본문: 레위기 5장 1-19절
제목: 우리는 매일마다 예배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찬송: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 속죄제

속죄제는 고의성이 없이 우연히 저지른 범죄나 무지하여 범한 죄를 용서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레4장)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5-6)

잘못을 깨달았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속죄해야 합니다. 죄를 지은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죄를 안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죄를 지었다면 빨리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풍성한 예물을 드릴 능력이 없는 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속죄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11)

누구나 다 용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누구도 소외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속죄제입니다.

이미 죄를 지었는데 왜 제사를 드려야 합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복은 먼저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많은 경우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회개가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죄입니다. 교만입니다. 

둘째, 앞으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자신이 무엇에 취약한지를 깨닫고 앞으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단지 과거의 일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그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반드시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성숙은, 자신의 영적인 약점을 깨닫고 자신이 그 약점에 대해서 이길 수 없는 존재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했다면 계속 넘어져 있지 않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성숙입니다. 

질문:
당신에게 있어서 영적으로 가장 취약한 것은 무엇입니까? 계속적인 잘못을 줄이기 위한 예방책은 무엇입니까?


# 속건제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에 대해 범죄하였거나 하나님의 규례를 어겼을 때 드립니다.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16)

특히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그것에 대한 배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속죄제는 이웃의 물건을 늑탈한 경우와 같은 인간에게 잘못을 했을 때 드리는, 개인적인 예배입니다. 피해액의 5분의 1을 더해서 배상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배상을 해야 했습니다. 회개는 단지 입으로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 배상을 해야 합니다. 잘못에 대한 물리적 책임을 지는 것이 회개입니다. 

오늘날 회개는 너무 간소화되고 간편화되면서 잘못했다고 기도하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기독교권 안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는 주홍빛 같은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그 용서는 우리 대신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값에 대해 배상을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속건제의 정신입니다. 이런 속건제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 속죄제와 속건제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린다면 예배를 드리다가 볼 일 다 볼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예배가 필요한 것일까요? 왜 이렇게 예배가 많은 것입니까?

하나님은 속죄제, 속건제를 통해서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죄가 우리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죄에 더 깊이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만일 속죄제와 속건제가 없다면 우리는 죄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제사가 많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마다 예배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경건한 예배자로 존재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