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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교회

1월 4일, 레위기 6장

2023.01.03 21:40

관리자 조회 수:110

본문: 레위기 6장 1-30절
제목: 추가적인 것들이 주는 핵심적인 교훈들
찬송: 433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 추가적인 내용들

번제와 소제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들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배자가 주의해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첫째,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13)

하나님은 불을 절대로 꺼트려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번제는 불로 제물을 태우는 예배이기에 불이 꺼지면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9)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12)

한 문단에서 연이어 '불'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불을 강조하는 것은 언제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배 드릴 수 있는 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중에도 언제든지 불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중단되면 안됩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책 [결정적 순간]은, 일상의 평범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않는 하나의 '불'과 같은 것입니다. 이 불을 꺼트리지 마십시오.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포착하고, 기록함으로서 예배자의 거룩한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합시다. 

둘째, 옷을 갈아 입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10-11)

제물을 태우면 재가 발생합니다. 그 재를 버리기 위해서 진영 바깥으로 나갈 때, 제사장은 번제 때 입었던 옷을 갈아 입고 다른 옷을 입고 가야 합니다. 그 옷은 거룩한 제단에서 거룩한 일을 할 때만 입는 옷입니다. 예배복과 일상복이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입는 옷도 구별해야 합니다.  예배는 무슨 옷을 입을까 부터 시작됩니다.(여행도 그렇습니다. 여행을 위해서 옷을 구입하면서 예배를 위해서 옷을 구입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 꼭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반바지에 슬리퍼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의 옷차림은 결국 마음의 반영이고, 표현입니다. 예배자의 마음 가짐이 옷으로 표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 나올 때 옷차림도 구별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옷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몸과 마음, 언행의 모든 것들 하나 하나가 예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그 모든 것들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예배에 어울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거룩한 곳에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소제를 드리고 남은 음식은 제사장들의 몫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그 음식을 나눠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을 먹는 장소도 하나님께서 지정하셨습니다.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의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16)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법입니다. 그래야 그 예배를 하나님께 받으셨습니다.


# 쉬운 예배! 쉬운 신앙?

이제는 구약의 까다롭고 복잡한 예배 순서들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현대인의 예배는 너무 편합니다. 그리고 갈수록 예배는 예배자에게 더 편리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구도자 예배는, 아예 구도자 입장에서 순서가 진행됩니다. 불신자들도 전혀 거부감 없는 편한 예배입니다. 

그런데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요? 

어렸을 때 전화기는 동네 회관에 하나 있었습니다. 먼 외지에 나간 가족이 마을회관으로 전화를 합니다. 먼저 이장님이 받습니다. 그리고 마이크로 온 동네에 방송 합니다. 
"누구집, 전화 왔어요"
그러면 가족 중에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달려가서 대기합니다. 5분이나 10분쯤 후에 다시 전화가 오면 기다리던 가족이 받아서 통화를 했습니다. 
그 시절의 전화는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애틋하고 귀중했습니다. 가족의 안녕과 소식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상대방이 통화중인 것도 참지 못합니다. 편리함의 극에 이르렀지만, 한 통화의 그 간절함과 애절함은 사라졌습니다. 편리해서 얻은 것이 있지만 잃은 것도 있습니다. 

질문:
내 자신의 신앙이나 예배를 드리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현대화된 신앙으로 인해 잃은 것들이 무엇인가를 살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