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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교회

1월 26일, 레위기 24장

2023.01.25 22:14

관리자 조회 수:129

본문: 레위기 24장 1-23절
제목: 매일, 매주의 경건을 유지하라
찬송: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앞선 23장까지의 절기가 특별한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사였다면, 등불을 계속 켜고 떡을 항상 진설하는 것은 매일, 매주의 의무였습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입니다. 그리고 그 일상은 부단한 노력으로 유지됩니다. 

# 매일 등잔불을 정리하라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3).

이스라엘은 매일 하나님 앞에 정결한 등불을 밝히고, 그 정결함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에 떡을 진설해야 했습니다. 등불을 켜고, 떡을 진설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한 일이었습니다(:8).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를 살피고 정결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아론은 특별히 밤 시간에 등불을 항상 타오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3). 누군가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깨어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파수꾼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수고를 통해 사회가 유지되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성숙하고 지혜로운 자들에게 당신이 사랑하시는 연약한 자들을 맡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순결한 기름으로 하나님 앞에 등잔불을 ‘계속’ 켜 두어야 했습니다(:2). 

# 매주 언약의 빵을 진설하라

그리고 안식일마다 ‘항상’ 떡을 진설해야 했습니다(:8). 매일 정리하고(:3-4), 매주 진설하는(:8) 행동은 상당한 신경을 써야 놓치지 않는 일입니다.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8).

진설병상은 매주 점검해야 할 기물이었습니다. 진설병상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큰일이었습니다. 빵 하나의 부피가 2/10에바(약 4.4리터)였습니다(:5). 딱딱하고 커다란 빵 12개가 항상 진설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출애굽기에서 이 빵은 히브리어로 ‘레헴 파님’이라 불립니다(출애굽기 25장 30절). 직역하면 ‘얼굴의 빵’으로서 ‘(하나님의) 임재의 빵’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 즉 제물이라고 불립니다. 성소의 뜰에 놋 제단이 있었듯이, 성소 안에도 제단이라 불리는 향단이 있고, 또 매주 올려 드리는 제물, 임재의 빵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빵 위에 소제처럼 유향을 두고, 이를 제사장들이 먹을 뿐 아니라 “지극히 거룩하다”라고 규정한 것을 보면 이 빵이 제물로 여겨졌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9). 제사장들은 매주 엄청난 양의 빵을 굽고, 지난주에 들여놓았던 빵을 내어온 후 다시 새 빵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묵은 빵을 먹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누룩을 넣지 않고 구워 딱딱한 빵, 그것도 일주일이 지난 빵을 먹으려면 그마저도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제사장들이 필수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라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16)

이어서 공동체 안에서 두 사람이 다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10). 두 사람의 싸움이 켜져서 도를 넘었습니다.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이제 개인 사이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차원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상당한 수의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과 함께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이방 백성에게 동일한 수준의 율법 준수를 요구하십니다. 한 공동체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속된 여러 공동체 내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합니다. 아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함께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무지 때문에, 혹은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고통받고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범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슬로밋의 아들을 가두고 하나님의 판결을 기다렸습니다(:12). 하나님은 율법을 제정하신 분입니다. 죄에 대한 판결은 인간의 뜻이나 감정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예로 오늘 본문은 율법에 근거한 형벌 조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19). 
율법 안에 담긴 이 원리는 지나친 보복을 금하고, 사람들의 보복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보복하고 복수하려는 죄의 본성을 내려놓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자비와 용서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따를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율법으로 세우신 정의와 사랑이 우리를 통해 땅에 드러날 것입니다. 


매일, 매주 정결을 위해 노력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매일의 경건 생활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참된 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규례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아울러 성숙한 공동체는 실수와 범죄를 예방하는 곳이며, 범죄자를 잘 보듬어서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연약하고 무지한 지체도 범죄하지 않도록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목해서 보시는 이웃 사랑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긍휼과 용서를 실천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참된 평화를 허락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