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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교회

2월 11일, 민수기 11장

2023.02.10 20:51

관리자 조회 수:127

본문: 민수기 11장 1-35절
제목: 광야는 결코 텅비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찬송: 211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 광야의 진실

민수기의 내용적인 제목은 '광야에서'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보낸 40년간의 유랑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낸 광야는 마실 것, 먹을 것, 입을 것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적인 요소들로 인해 여러 차례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광야는 고난의 자리였습니다. 

그럼 그것이 전부일까요? 광야는 어떤 곳일까요? 20절 말씀입니다.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본문 중에서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라는 부분에 주목해 봅시다. 
그들 중에 계신 하나님 여호와를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임마누엘”입니다. 구약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출애굽기에서 소개된 성막입니다. 민수기에서는 그 성막이 이스라엘의 진행과 숙영의 중심이었습니다.

광야는 경작할 수도,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한계의 장소입니다. 광야는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 하고,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하고, 적들로 인해 두려워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광야가 은혜와 기적의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광야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중에 거하시면서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바위에서 물을 내셨고 적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광야는 육신의 눈으로 보면 텅 비어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곳입니다.
광야는 육신의 눈으로 보면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큰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광야의 진실입니다. 


# 광야에서는 더욱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민수기의 성공과 실패는 광야길을 걷는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신뢰하느냐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에게 반역했을 때, 그들은 실패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행진을 시작하자마자 악한 말로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여호와의 불이 진영 끝에서부터 일어나서 백성들이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1)

광야는 그런 곳입니다. 한시라도 방심하면 금새 타락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쉬운 곳입니다. 

6절에 보면, 고기를 먹고 싶어하던 이스라엘이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탄식했습니다. 왜 그런 불만을 가졌을까요? 고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자신들을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불쌍한 이유는 그들이 배불리 먹을 고기를 갖고 있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자신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말로 원망했습니다.
광야는 부족하다고 원망할 곳이 아니라, 그런 곳에서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해야 할 곳입니다.
그것이 광야요, 그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광야의 비밀이 보입니다. 그런 곳에는 있을 수 없는 만나가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도 감사할 때, 원망할 때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입니다.
감사하면 '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만나의 감탄으로 살 수 있습니다.


# 원망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망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유형 1: 
마라의 쓴 물로 인해 갈증을 느낄 때 백성들이 원망했습니다.(출 15:22-23) → 모세가 기도했습니다.(25) →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물이 깨끗해져서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25)

유형 2: 
악한 말로 원망했습니다.(민 11:1) →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임했습니다.(1) → 모세가 중재하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2) → 하나님의 심판이 멈췄습니다.(2)

유형 1의 경우는 자신들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물과 음식)로 불평할 때 였으며, 이런 경우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만나, 메추라기, 물 등을 공급)

유형 2의 경우는 이스라엘의 탐욕이나 범죄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참고, 민 11장 34절의 기브롯 핫다아와,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을 묻었습니다.)

11장에 나오는 2개의 사건 모두 유형 2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원망과 탐욕으로 빚어진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십니다. 그들에게 뜨거운 불을 내리시고, 탐욕을 품은 자들을 묻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원망을 극히 미워하십니다. 

왜 이렇게 단호하게 하셨을까요?

탐욕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4) 로 시작된 일이 10절에 이르러서는 백성의 온 종족들에게까지 퍼졌습니다. 거룩해야 할 진영이 원망의 말 한 마디에 금세 전염되었던 것입니다. 

광야는, 할 일이 없습니다. 가면 가고 멈추면 멈추는 것이 광야의 생활입니다. 그러니 사람이라는 존재가 열정을 쏟을 일이 없으면 딴 생각을 하고, 불평을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그렇게 해서 부정적인 말은 이스라엘 진영 전체에 바이러스처럼 금세 확산됩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순결함을 유지시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단호하게 대응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광야처럼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불평하지 맙시다. 불평은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말로 원망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악한 말을 미워하십니다.

신앙의 공동체에 있어서 안될 것은 악한 말입니다. 
불평입니다. 

부족할 때,
문제가 보일 때,
그 때 우리는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면, 우리의 말이 달라지고,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광야를 지나갈 때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