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결단: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지난 주에, 실패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조반을 주시면서 "그래도 살아라"는 주님의 당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조반을 먹었다면,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그럼 어린 양은 누구일까요?
먼저는,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양인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그가 먹을 조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베드로에게 내가 너에게 했던 것처럼 이제부터는 너도,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주는 내 밥을 먹고 힘이 났다면 너도 이제 어린 양을 먹이라, 그가 살아가도록 힘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는, 우리가 어디에 힘을 쓰는가를 보면 문명해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면서, 그 힘을 부디 거룩한 일에 사용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조반을 먹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면'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당부의 의미는 단지 연약한 자를 도우라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일은 외형적으로는, 거창하거나 멋진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너는 나를 대신해서 살아라"는 뜻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어린 양 한 명을 살피고 살리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어린양과 같은 작은 일,
내가 돌보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작은 일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린 양 하나를 위해서 사십시오.
주님은 이 당부를 제자들이 가장 무기력할 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실패했다고 하는 그 순간에도, 가장 가난하고 가장 병들었다고 하는 그 때에도, 그래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그 순간에도, 그 누구든, 그가 어떤 형편에 있든,
그 사람도 어린 양 한 명을 책임질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결국, 내가 살아갈 이유가 되어, 나를 살리게 하는 힘이 됩니다.
주님은, 나를 살리기 위하여 어린 양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신 진짜 이유입니다.
그거면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베드로 사도를 통해 주신 약속처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벧전 5:4)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어린 양을 먹이고 난 뒤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도 예수님의 어린양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린양으로 인정해주시고 우리를 먹이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도들 중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을 자신의 목자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사도가 된 뒤에도 여전히 예수님이 주시는 조반으로 먹고 살아가야 하는 즉, 예수님의 돌봄이 필요한 어린 양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여전히 어린 양이라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내가 예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남은 인생, 주님이 주시는 힘을 제대로 사용해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어린 양을 돌보면서 살아갑시다.